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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우 칼럼] 노계(老計)

등록일 2024-01-30 21:07:22 조회수 233

어느덧 나이 80대 중반이다. 그러니 이제 이런 이야기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30여 년 전 어느 신문의 칼럼에 인생의 오계(五計)에 대하여 졸문을 기고한 적이 있었다. 50대도 채 되기 전에 어떻게 늙어가고 어떻게 죽어야 할까를 신문에 쓰다니 지금 생각하니 그땐 아직 그런 걸 쓸 나이가 아니었는데 하고 혼자 부끄러워한 적이 있었다.
  
 오계란 두 말할 것도 없이 중국 송나라(960~1279년) 학자 주신중(朱新仲)이 인간이 한 평생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다섯 가지의 계획을 올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첫째 생계(生計)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계획, 둘째 신계(身計)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한 계획, 셋째 가계(家計)는 가족과 가정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 것인가의 계획, 넷째 노계(老計)는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의 계획, 즉 노후관리, 다섯째 사계(死計)는 죽음에 임하는 자세를 말한다 할 것이다.

 

오늘 새삼스럽게 노계(老計)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그동안 긴 인생에 대한 깊은 생각도 없이 너무 파란만장, 변화무쌍한 삶을 살아온 것이 한(恨)스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생의 오계(五計) 중 생계(生計), 신계(身計), 가계(家計)를 등한시하여 살아온 것이 가족들과 주위에 너무도 미안하고 죄스러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생의 끝자락에 노계(老計)만큼은 신중한 숙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열정을 쏟는 것이 속죄가 된다고나 할까.

 

65년 전 지방에서 고교를 졸업, 청운의 뜻을 품고 상경하여 대망의 법과대학에 들어갔다. 그런데 졸업 후 우여곡절 끝에 자리를 잡은 곳은 기업 쪽이었다. 소수의 법관, 관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업 쪽으로 가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법대생의 진로였지만 평생을 사업이란 걸 한답시고 냉온탕을 번갈아 드나든 것은 태어날 때부터 기구한 인생이 예정되어 있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어려운 고비 특히 천재지변을 많이 겪은 것이 팔자소관이라 하고 싶으나 나의 성격 탓이었다고 반성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도 그 한 예이다.

 

파란만장의 중·장년 시절을 지나 이 나이에 이르고 보니 새삼스레 더 늦기 전에 노계를 세워야지 하는 생각이 밀려든다. 늙음을 탓할 것이 아니다. 탓할 것은 늙어서 계획 없이 허송세월하는 것이다. 노계(老計)를 아름다운 삶으로 설계하면 사계(死計)도 아름답게 마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내가 기업을 경영하면서 원만한 노사관계 등 많은 영감을 준 일본의 出光興産의 사장 이데미쓰(出光佐三)는 “인생이란 노후에 있다. 60세가 되어 과거를 회고할 때 지난 60년이 순식간에 흘러갔음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호강을 했느냐 고생을 했느냐 하는 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노후(老後)의 한 시간, 하루라는 것은 참으로 소중하다. 그 소중한 하루를 ‘아 좋은 일을 했구나.’ 하며 지내느냐의 여부가 인생의 행불행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분의 말대로라면 벌써 나는 25년을 허송한 꼴이 된다. 

 

앙드레 지드는 “아름답게 죽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름답게 늙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라고 하였다. 채근담에는 이런 말도 있다. “노류장화(路柳墻花: 妓生을 의미)의 여인이라도 나이 들어 좋은 남편을 맞게 되면 30년의 바람기도 말소되지만 아무리 정숙했던 여인도 말년에 지조를 더럽힌다면 애써 지켜온 반생의 지조도 허사다.” 사람을 보려면 그의 말년을 보라는 옛말도 있다. 

 

막상 오계를 세우려니 오만 생각이 부침한다. 아름답게 늙는다는 것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다. 아름다운 늙음이란 결코 돈으로 간단히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따뜻하고 훈훈한 배려의 마음과 정감 어린 포근함에서 스며 나오는 ‘사람의 향기’가 아름다운 늙음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늙어 몸 추스르기조차 어렵고 병으로 신음한다 하여 추한 늙은이가 아니지 않는가. 늙어 사사로운 욕심을 버려야 할 시기에 버리지 못하면 우리는 그것을 노욕(老慾)이라 하고, 그 볼품사나운 형상을 두고 노추(老醜)라 하지 않는가. 

 

선현들은 말했다. “生死事大 無常迅速 光陰可惜 時不待人(살고 죽고 하는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간은 덧없이 지나가니 분초라도 아깝게 생각하라. 시간은 결코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세상을 달관했다는 어느 분도 죽음을 앞에 둔 마지막 순간에는 “죽고 싶지 않다.”고 했다던데 나 같은 범인(凡人)이야 나의 능력에 비추어 과분(過分)한 일까지 해온 셈인데 조용히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 死計를 앞에 두고 새삼스레 老計를 생각한다.

 

흔히들 행복의 네 가지 조건으로 운명과 건강과 가정의 축복을 받고 마지막으로 죽음의 축복을 받는 것이라 했다. 앞의 세 가지 축복은 이미 지나간 일이라 하더라도 마지막 죽음의 축복만은 받고 싶다. 그것이 나를 낳아준 부모님에 대한 도리이고, 자식들에 대한 의무일 것이다.

 

“언제까지나 살고 싶다.”라고 바라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렇게 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누구는 이 세상에 가장 확실한 것은 ‘죽음’ 밖에 없다고 했다. 누구나 죽음을 회피할 수 없기 때문에 결코 두 번, 세 번 사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나이 들면 누구나 맞이하는 노경(老境)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사람은 없거나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인생은 유한하고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언제 죽음과 마주하더라도 구차하지 않고 당당하려면 生計, 身計, 家計가 충실했어야 함은 물론이고 그게 미흡하면 老計라도 잘 세워 마지막 死計에 보탬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이 돈을 벌되 덕을 갖추면 청부(淸富)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이 돈을 벌되 덕을 갖추지 못하면 두 가지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 첫째 돈의 가치가 보이지 않고, 둘째 사람의 가치가 눈앞에서 달아나 버린다. 돈 냄새는 마약보다 더한 마취제다. 이런 걸 두고 적부(赤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반수(半壽)를 넘은 나이로 부(富)를 추구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따라서 이데미쓰가 말한 늙어서의 소중한 하루, 한 시간을 상기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순탄한 환경은 사람을 죽이고, 역경은 사람을 살리고 키운다고 하는 옛말을 위안으로, 노년을 봉사정신으로 살아가는 것도 도리일 것 같다. 

 

시쳇말로 “재산을 잃는 것은 적게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라 하여 건강을 제일 중요한 것으로 거론한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는 명예를 잃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명예는 두고두고 계속해서 그리고 자자손손 대대로 잃는 것이니 목숨이 붙어 있어도 온전히 산 것이 아닌 게 된다. 그러므로 명예는 노계에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귀중한 가치라 하겠다.

 

윤리와 도덕은 인간이 항상 지녀야 할 덕목이다. 윤리의 중요성은 기업 경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기업 실패 후 재기의 과정에서 위인구아(爲人救我)의 정신으로 설립하였던 한국팔기회를 20여 년간 꾸려가면서 찾아냈던 기업도산의 주요원인 10가지 중 6~7이 경영윤리를 지키지 않았음에 있었다. 

 

또한 2005년부터 한국기업윤리경영연구원 운영에 참여하면서 기업의 윤리경영이 기업의 존재가치를 높이고 지속가능발전의 원천이며 가장 중요한 글로벌 경쟁력임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대중소, 공사기업을 막론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기업의 발전은 물론이고 국가발전의 원동력임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새삼스레 나의 노계를 생각하면서 한국기업윤리경영연구원의 충실한 활동을 통해 우리 기업들의 윤리적 경영의 지평을 넓히고 내실을 다지는 데 일조하는 것이 과거 수십년 기업경영의 부침을 경험한 사람으로서의 숙명적 선택이고 사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2024년 01월 30일

한국기업윤리경영연구원 이사장 南在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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