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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칼럼] 막말 논란과 4물(四勿)의 가르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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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30 15:54:14 | 249 |
웬 막말 소동인가. 잠깐 매너(manner), 예의를 잊은 건 아닌지. 우리 속담은 ‘관 속에 들어가도 막말은 하지마라’고 가르친다.
지난 9월 20일 진료지원 간호사(PA간호사)의 의료행위를 보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간호법 제정안이 공포되었다. 당사자인 대한간호협회는 환영 입장을 표시했고, 이에 대한 대한의사협회 고위 임원의 발언이 그동안 의료파업 사태에서 간간이 있었던 막말 논란에 또 다른 불을 질렀다. 의사들을 대표하는 단체, 집행부 발언으로 부적절했다는 비판이다.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렵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 비록 일부이지만 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의 발언에 ‘되는대로, 함부로, 품격이 낮고 저속하게 하는 말’ 이른바 막말이 부쩍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권, 기업과 문화, 체육계, 심지어 종교계에 이르기까지 리더라고 일컬을 수 있는 일부 인사들의 막말은 가고 올수록 그 강도가 높아진다. 禮尙往來라 했는데 오히려 非禮가 往來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분노와 상심, 혼란을 주고 있다. 특히 리더부문의 視聽言動 행태가 우리사회에 끼치는 파급영향을 고려하면 크게 우려되는 일이라 하겠다.
막말이 어느 정도 횡행하고 있을까. 어떤 분야, 리더들이 주도하고 있을까. 우리 속담은 어떠한 경우라도 말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음에도 말이다. 지난 9월 중순, 많은 언론매체는 ‘수치로 나타난 막말 국회’라는 제목으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 정당에서의 각종 막말이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난다고 보도했다. 서울대 연구진이 욕설, 모욕 등을 학습한 사적학습 언어모형을 활용하여 국민의힘·민주당 논평 4만5천여 건을 분석한 결과, 이들 양당이 사용하는 언어의 공격성이 대폭 증가했다는 내용이다(연합뉴스. 2024. 9. 15.)
2007년∼2023년 동안 양대 정당이 낸 논평을 바탕으로 두 정당의 공격적 언어사용 패턴을 분석한 결과, 윤석열정부 기간 중에 있었던 양당의 하루치 논평에서, 제목의 공격성 증가 폭은 약 2점, 본문에선 약 14점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가장 높은 수준의 공격성을 담은 제목의 논평이 그 이전 시기 하루 1개 정도 발표됐다면, 윤석열 정부에서는 하루 3개 정도 발표되고, 본문에서의 공격적 표현도 평균 14개 정도 더 많이 쓰였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연구진은 ‘상대방에 대한 공격과 조롱, 비방이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수단으로 자리 잡은 우려스러운 상황으로 민주주의 발전과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왜? 매너이고 예(禮)인가. 윤리도덕 교육이 강조하듯 예의범절(禮儀凡節) 있는 발언과 논평, 토론, 소통은 독려되어야 할 덕목임엔 틀림없다. 그러니 상대방에 대한 공격과 조롱, 비방은 도덕윤리 실천의 핵심인 예(禮)라는 덕목에 크게 어긋나는 행위다. 私利와 私慾, 小我를 벗어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와 도리를 지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의 핵심은 존중과 배려인데, 상대방을 중하게 여기지 않고, 마음을 써서 보살피지 않는 것이다. '예'가 없으면 무례(無禮)한 것이고, 잃어버리면 실례(失禮), 갖추지 못하면 결례(缺禮)인 것이다. 남에게 불쾌감을 줄 뿐 아니라 사회질서를 어지럽게 한다. 옛말에 예를 모르면 사회에 설 수 없다고 했다(不知禮 無以立也; 論語 堯曰篇 )
禮는 법규와 달리 강제성이 없음에도 관혼상제와 같이 일정한 준거가 되는 禮法과 禮式, 태도나 몸가짐을 나타내는 禮儀, 절도가 필요한 禮節이 있는데 거의 같은 의미다. 영어로는 'good manner, etiquette, ritual, ceremony 등’으로 표현하는데 ‘good manner, etiquette’은 개인적인 몸가짐과 태도의 의미가 강하다. 도덕윤리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인(仁)에 대해 어느 제자가 물었을 때 공자는 ‘자기를 규율하고 사회의 행동규범인 예를 실천하는 것’이라 했다(克己復禮爲仁). 아울러 인을 행하는 구체적 방법을 묻자 공자는 ‘예가 아니거든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말라’고 가르쳤다(四勿의 가르침;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論語 顏淵篇)
우리사회의 예의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나라 성인들은 10명 가운데 6명(59%)꼴로 우리사회 예의점수를 70점 이하 낙제점이라고 평가한다. 아울러 우리 성인들은 나는 비교적 예의를 지키는데 상대적으로 남들은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언론기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남과 나를 보는 인식의 격차가 매우 크다. '나는 예의바른가, 남들은 예의바른가'라는 별개의 질문에 '그렇다'라는 응답비중이 각각 48%, 29%로 나타났다(서울경제신문 2018.1, 조선일보 2020.7)
우리는 禮라는 사회규범을 종종 무시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망각한 채, 비례(非禮)하고 매너없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나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더욱이 사회적 이슈나 관심사를 협의하고 토의할 때 상호 간의 의견을 존중하고 화합에 이르게 하는 예라는 덕목을 잊고 자기 의견과 주장을 강제하는 결례를 반복하여 많은 합의와 공감 형성을 더욱 어렵게 만들지 않았나 성찰해야 한다. 마땅히 지켜야 할 예의라는 지적태도를 존중할 의사가 없을 정도라면 그 사회는 윤리적 문화가 착근하기 어려운 야만의 사회로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4년 09월 27일
한국기업윤리경영연구원 이사 박종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