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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칼럼] 국회의원, 공직자의 모럴 해저드와 염치불고(廉恥不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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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0 14:30:11 | 197 |
금년 3월 초 통계청이 펴낸 '2023 한국의 사회지표'에는 우리나라 공공기관 중 국민 신뢰도가 가장 낮은 곳이 국회라고 알려주고 있다. 국회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24.1%에 불과해 지방자치단체(58.8%), 군대(54.5%), 중앙정부(53.8%), 경찰(51.4%)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신뢰도는 '각 기관이 맡은 일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믿느냐'는 물음에 '약간 믿는다'와 '매우 믿는다'로 응답한 사람의 비중을 합한 것으로서 국회신뢰도는 검찰(45.1%)에 비해서도 크게 떨어진 수치이다. 얼마 전 9월 중순에는 OECD가 조사한 우리나라 국회에 대한 신뢰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28위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중요한 민생·경제 법안은 뒷전에 둔 채 정쟁이 반복되면서 국회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것으로 지적 한다(중앙일보, 9.20)
22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런저런 평가와 심중소회가 적지 않다. 특히 감사를 진행한 국회의원이나 피감기관, 행정관료, 증인, 참고인 간에 오고 간 발언, 본질과 동떨어진 문답, 염치불고(廉恥不顧)한 모습은 뇌리를 떠나질 않는다. 국정감사 본래기능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의문이 크다. 염치廉恥란 문자 그대로 청렴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몰염치(沒廉恥), 파렴치(破廉恥)와 같이 염치를 모르면 개선, 발전하기 어렵다. 옛말에도 부끄러움을 모르면 못할 짓이 없다고 했다(不廉則無所不取, 不恥則無所不爲 ; 고염무顧炎武)
지난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한 강화도 한 주민의 무릎 꿇은 모습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초등학생인 딸과 아들을 키우고 있는 이 여성은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 소음으로 가족 모두의 일상이 무너졌고 그 개선대책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피감기관인 정부 관계자가 대책 마련을 약속했지만, 행정관료, 국회의원과 같은 공직자는 그동안의 주민 고통과 그 개선이 지지부진한 것에 대해 먼저 사과했어야 마땅했다. 앞서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 어느 국회의원은 인터넷을 통한 중고차 허위거래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장관 동의없이 국토부 장관 관용차를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 매물로 올린 것을 공개했다, 의원들 간에 정당한 의정활동 범위와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대한 논란이 크게 일었다.
한편 방송통신위원회 등을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는 방송문화진흥회 직원 중 한 명이 기절하는 사고가 발생해 감사장에 119구급대원들이 출동했다. 이를 두고 국회의원들과 피감기관 고위 관료는 욕설과 막말을 주고 받았다. 피감기관 고위 관료는 유감 표명에 이어 ‘개인적으로 한 말이고 누군가를 특정한 게 아니며, 직원들이 큰 고통을 호소하는 상태에서 나도 감정이 좋을 리가 없다’고 말했다. 국회방통위는 이 고위관료를 국회 모욕죄로 고발하기로 의결했다.
우리는 정·관계를 중심으로한 각계 많은 지도자들이 국민의 눈 높이를 강조하는 것을 자주 접한다. 그러나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고 해서, 임명직 공직자가 되었다고 해서, 혹은 직책과 직위가 높다고 해서 이들 스스로의 시청언동이나 도덕윤리 의식이 반듯하게 국민의 눈높이를 상회하거나 기대 수준에 맞는다는 확신은 갖지 못한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많은 국민들이 직접 이들의 언행과 태도를 접하면서, 공직자의 윤리도덕성, 준법성을 반신반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혹시 소홀히 했던 예의, 염치나 면목, 역할이라는 의미, 위치를 다시금 되살린 것이 소득이라면 아주 큰 소득이라 하겠다.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은 이번 국정감사를 ‘정쟁 국감’으로 혹평하며 'D-'의 성적을 매겼다. 낙제점(F학점)을 면한 수준이다. 26년간 국정감사 활동을 평가해온 모니터단은 모든 상임위에서 감사가 아닌 수사를 하듯 하는 정쟁 국감이었다고 지적했다. 민생을 챙기고, 업무상황을 감독, 평가하여 정책대안을 제시하는데 소홀히 하면서 법규를 어긴 것은 없는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나를 알기 위해 증거를 수집하고 범인을 찾고자 활동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출석한 피감기관 관계자와 증인들의 발언은 제한하고 들러리 세우는 행위도 재연됐다. 9월22일까지 630개 피감기관 관계자가 국감장에 출석했지만, 이 중 209개 피감기관(33.2%)은 한 차례의 질문도 받지 못했다. 피감기관을 불러두고 온종일 질의 하나 없이 대기시키는 권위적 행태도 반복됐고 오고 간 '막말'도 적지 않았다. 모니터단은 국회의원과 피감기관이 국민에게 생중계되는 감사장에서 비속어를 남발했다고 지적했다.
혹 우리가 묵과하고 있는 것은 주인과 대리인의 문제가 아닐까. 국회의원과 공직자는 국민이라는 국가주인의 대리인이라는 사실이다. 행정관료나 공직자는 대통령의 대리인이자 국민의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지낼 때가 너무도 허다하다. 게다가 우리는 그동안 국회의원이나 관료, 공직자와 같은 대리인의 권한과 행동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많은 관용과 이해, 때로는 무관심을 갖지 않았나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국민은 대리인에게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하도록 의사결정 권한을 위임했는데, 많은 정보나 정책에 먼저 접근(asymmetric information)할 수 있는 대리인들은 국민이 완벽하게 감시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이용하고 있지 않은지. 이 권한을 대리인 자신의 정치적, 행정적, 권위적 입지를 다지거나 사적 이익을 우선하는데 사용하는 이른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공직사회에서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면 부정비리와 무사안일 풍조가 발생하고 국민들의 고통이 많아질 뿐 아니라 민간부문의 경제 활동은 크게 위축될 수 있다.
우리는 국회의원을 포함한 공직자들이 도덕적 해이에서 자유로운가 면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염치불고한 고질적 행위가 국회의원을 포함한 공직자 개인의 문제인지 아니면 제도나 시스템, 문화의 문제인지 종합적인 진단이 요청되는 것이다. 문제 발생의 원인과 책임규명, 책임추궁 기술과 방법, 재발 방지를 위한 법과 제도의 확충은 물론 문화와 관행이 개선되어야 국민적 동의, 신뢰제고 속에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적, 품격높은 윤리적 사회에 보다 빨리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4년 10월 29일
한국기업윤리경영연구원 이사 박종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