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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우 칼럼] [기업의 도산에 대한 기획칼럼 3] 도산자의 자세

등록일 2026-04-30 13:41:48 조회수 17

이 글을 쓰며

 

필자는 약 20여 년간 경기도 의정부에서 섬유기업(제조업)을 운영해왔다. 한때는 사업이 순조롭게 성장하여 중국에 합작 투자 형태로 생산기지를 두기도 했고, 의정부 공장 부지에서 온천수가 발견되어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기대에 부풀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경영난이 심화되었고, 전반적인 섬유산업의 퇴조와 두 차례의 수재(홍수)까지 겹치면서 결국 은행 채무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결과 2002년, 회사는 파산에 이르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경영주가 아무리 애를 써도 피할 수 없는 외부 환경도 있었고, 돌이켜보면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선택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경영주인 필자의 부족함에 있지 않았는가 하는 자책을 지금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이어오고 있다.

 

비록 회사는 도산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에게 불편과 고통을 끼치게 되었다. 그로 인한 책임을 조금이나마 덜고자,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오랜 시간 고민해왔다. 이 글은 그러한 고민의 결과로, 당시의 경험과 깨달음 가운데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정리한 것이다.

 

그동안 이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왔다. 부도로 인해 좌절한 이들을 돕기 위해 1992년 ‘팔기회(八起會)’를 조직하여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재기를 위한 용기를 북돋았다. 1995년에는 경기도 정무부지사로서 기업 현장의 어려움을 정책에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을 통한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돕고자, 지인의 요청으로 한국기업윤리경영연구원(KBEI)을 맡아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필자는 과거 기업을 운영하던 시절, 윤리경영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지 못한 채 경영에 임했던 부분이 있었음을 솔직히 고백하고자 한다. 당시에는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우선으로 생각하였으나, 지금 돌아보면 조직 내부의 작은 문제 신호를 사전에 인지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구조를 갖추지 못했던 점이 결국 더 큰 위기로 이어졌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이후 연구원을 운영하며 다양한 기업 사례를 접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단순한 경영성과가 아니라 ‘투명성과 윤리성’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특히 조직 내부의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체계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고민 끝에 내부 구성원들이 안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신고시스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에서 2006년에 국내 최초로 ‘케이휘슬(K-Whistle)’이라는 내부신고시스템을 개발하여 공공기관과 기업 전반에 확산·정착시키는 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2008년에는 ‘통신망을 이용한 기업내부고발 시스템 및 방법’에 관한 특허(제10-0846908호)를 취득하기도 하였다.

 

이는 단순한 신고 창구를 넘어 조직 내 잠재된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고,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필자가 윤리경영과 내부신고시스템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힘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이 글은 그 빈자리를 조금이나마 채우고, 과거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필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수많은 회한의 조각들을 솔직하게 정리하여 전함으로써, 유사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1. 개인(본인)과 가정에 대한 자세

 

· “현재 당하고 있거나 다가올 일들을 겸허하게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기가 예견하지 못한 일을 자기를 보호하는 신이 다음 길도 인도하고 있다고 믿고, 담담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 “어떠한 경우라도 회사는 뒤로 재끼고 개인이나 가족의 생활을 위한 자금 확보를 우선하지 마라.”

작은 것에 연연하다 보면 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오해를 낳거나 걸림돌이 되기 십상이며, 이것은 재기하는 데에도 치명적인 장애요소가 될 수 있다.
· “부하, 혹은 주변 친구들의 외면을 배신으로 생각하지 마라.”

상대방의 생각이 모두 내 생각과는 같을 수 없으며, 내가 평소에 더 베풀지 못했음을 자성하는 계기로 삼아라.
· “아무리 경황이 없더라도 도산의 원인을 나름대로 정리해둔다.”

도산한 원인이 외부의 영향에 있지 않고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생각되어지면 누굴 원망하  거나 하여 스스로 마음이 불편하던 것에서 해방되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건을 해결하여 재기해야 하는 것이다.
· “술, 도박, 혹은 순간적인 위안에 기대어 고통을 잊으려 하지 마라.”
  한 질병에는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적절한 약만이 처방되어야 한다. 이러한 것은 일시적으로 정신적인 위안이 될지는 모르지만 결국 2중, 3중의 고통을 더 겪게 된다. 근원적이고 직접적인 해결방법이 아닌 것은 어떤 경우라도 조절, 절제하는 것이 좋다.
· “일생의 반려자인 배우자와 항상 모든 일을 상의하라.”

가정의 평화는 재기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부도가 발생하기까지의 원인과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본인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 논의하라. 무엇보다도 배우자의 동조 없이는 어떤 일도 힘들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아직 어리다고 생각되는 자식들에게도 가족회의를 통해 입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다.”

특히 학교의 담임 선생님과는 면담을 통해 자녀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협조를 구하고 자식들의 아주 가까운 친구들 가정에도 조언을 요청한다.
· “쉽게 해결되지 않을 상황이면 피해 다니는 것은 채권자들에게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켜 감정만 악화시킬 따름이다. 되도록 빨리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재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 채권자에 대한 자세

 

·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관계자를 우선 찾아가 모든 것을 자세히 설명하라.”

부끄럽고, 죄스럽고, 또 그동안 거짓말을 했던 것으로 되어 금융기관에 대하여는 미안하여 용기가 나지 않을지 모르나 반드시 찾아가 상의하라. 성실한 사업가인 경우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그리고 후에 재기하는 과정에 불필요한 오해로 인해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 “부도 이후의 재산 처분에 은행 등 금융기관이 불이익 처분을 받지 않도록 노력하라.”  

일반 채권자나 자신을 위하여 부동산의 가등기, 근저당 설정 등을 고의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채무 면탈행위로 오해받을 수 있다.  
· “전채권자를 사채권자, 물품공급 채권자, 하청공임 채권자 등으로 나누어 누구만을 특별히 위하는 행동을 하지 마라.”

이것은 또 다른 불신과 오해를 예방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배우자를 통해 사채를 쓰는 일을  절대로 하지 마라. 부도 이후의 생활이나 재기를 위해서라도 한쪽의 신용은 있어야 한다. 부도 이후 배우자마저 채권자들에게 쫓기면 사업도 가정도 함께 무너지고 만다.
· “가능하다면 일반채권자 모두에게 찾아가 용서를 구하며, 재기의 의욕을 보여주고 도움을 청한다.”
찾아갈 수가 없을 경우에는 편지나 전화로 뜻을 전하고, 만약 상대편에서 만나기를 원한다면 별다른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만나기 바란다. 아홉을 해결하고 하나 때문에 모든 일을 망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않는가.
· “채권자의 채권명부를 작성하고 채권의 종류와 금액 등을 표시하여 조그마한 돈이라도 생기면 액수에 따라 비율 배분한다. 이때 소액채권을 먼저 주어 채권자 숫자를 줄여서 고달픔을 더는 방법도 생각해 볼만하다. 그리고 만약 필요하면 채무변제 각서를 써 주는 것도 고려  할 수 있으나 권장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앞서 나로 인한 피해를 만회할 수 있게끔 사죄와 함께 축복의 기도를 계속한다.
· “법인의 대표인 경우 발행된 어음이나 수표의 소지인인 채권자에 대하여 법인의 채권자이기 때문에 개인은 책임이 없다. 그러나 본인이 회사의 도산에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정도로 회사 경영에 잘못이 있다면 배서(背書)가 없다는 이유로 책임을 면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채권자들은 회사보다 그 개인을 믿고 거래한 경우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채권자들의 폭언이나 폭행에 대하여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라.”

먼저 나 자신이 그들이었다면 더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부터 하라. 만약 채권을 회수하기 위하여 그들이 폭력배를 동원하는 경우에는 설득해보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을 경우에는 사법기관에 호소해야 한다.
 

 

3. 종업원과 회사의 간부에 대한 자세

 

· “전 종업원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우선 잘못을 빌고, 도산의 경위를 가식 없이 설명해준다.”
· “종업원의 밀린 임금과 퇴직금 정리를 최우선 과제로 생각한다. 이때 받기 어려운 외상매출금 등은 종업원들이 임금정리의 차원에서 받으러 다니거나 법적인 절차를 밟으면 일이 보다 쉽게 해결 될 수 있다.” 
· “만약 회사를 살릴 수 있거나 좋은 원매자를 만나 뒤처리가 잘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종업원의 도움을 요청한다.”

만약 그동안 회사경영에 있어서 공사를 분명히 하고, 인간적인 신뢰를 얻어온 사장이라면  반드시 그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 “중역들이나 간부들에 대하서는 그동안 고생한 데 대한 진정한 감사를 표하고, 설혹 서운했던 일이 있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
· “그들 중 회사의 부채로 인하여 피해를 입게 되는 가정을 찾아가 그의 배우자와 가족에게 사죄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정에서의 배우자의 입장을 세워줄 수 있다.

 

 

4. 보증인

 

· “보증인에게도 역시 직접 찾아가 도산의 경위를 설명하고 우선 용서를 빈다.”
· “도산으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되는 보증인이 가장 큰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그들보다 절대로 더 나은 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그들이 입은 피해를 보상할 때까지는 겸허한 자세로 죄인 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들만이라도 보증채무 면책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협조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먼저 보증채무면책을 위하여 재산을 그들의 가족이나 제3의 자에게 허위로 양도했을 경우에는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결론적으로 회사가 잘못되어 부도처리 되거나 파산되었을 경우 회사의 재산이 부채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욕심 내지 말고 선량한 채권자를 도와주는 것이 옳은 일이고, 그렇게 함이 본인에게는 재기를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그러나 “보증인에 대해서는 그들의 재산이 나로 인하여 피해 받았다고 생각해야 된다.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는 끊지 않아야 한다. 자주 전화를 하거나 만나서 위로해야 하고 나의 잘못을 빌어야 할 것이다.”

 

 

2026년 4월 30일

한국기업윤리경영연구원 이사장 南在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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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1993.12.10. 발행된 『再起하는 기업인』 ‘제3장 기업의 도산’에 실린 글을 시대 흐름에 따라 저자가 직접 일부 편집하여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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