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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우 칼럼] 위인구아(爲人救我)와의 첫 만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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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0 13:22:2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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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우연한 만남을 조우(遭遇)라고 한다. 필자의 위인구아라는 말과 첫 대면도 바로 조우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첫 만남이 이뤄졌다. 첫 만남의 인상은 전 과정을 지배한다. 첫 대면에서 받은 강한 인상이 수십 년이 지난 오늘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그래서 위인구아와의 첫 만남을 회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1993년 5월의 일이다. 필자가 경영하던 회사의 의정부 공장에 백발노인 한 분이 찾아오셨다, 필자가 회사 부도로 실의에 빠진 경영인들을 위로하고 재기를 북돋우기 위해 팔기회(八起會)를 조직, 운영하던 때다. 팔기(八起)는 물론 7번 넘어져도 8번 일어난다는 칠전팔기(七顚八起)에서 따 온 말이다.
그 분은 사무실에 들어서자 방문 목적을 밝혔다. “당신이 팔기회를 만들어 운영한다기에 격려하러 왔다.” “이런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위인구아(爲人救我)다.” 그러시고는 가지고 온 두루마리를 펴 보였다. 초서로 爲人救我가 써져 있었다. “사람을 위하는 것이 나를 구하는 일”이라고 풀이까지 해주셨다. 그러고는 존함과 연락처를 묻는 필자의 질문을 뿌리치고 나가셨다. 그 뒤 백방으로 그 분의 존함이나 연락처를 수소문했으나 허사였다.
사무실 벽에 걸어둔 위인구아 액자를 볼 때 마다 팔기회 활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1998년 9월 초 우리 공장이 1984년에 이어 두 번 째 큰 수재(水災)를 입었다. 공장과 사무실이 2.2 미터의 물에 잠겼다. 1주일 여 지나 사무실에 들어갔다. 모든 집기가 물에 잠겨 못 쓰게 되어 있었다. ‘위인구아’ 액자도 벌건 황토물에 빠져 다시 걸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 이후 액자 속의 ‘위인구아’가 필자의 머릿속으로 옮겨왔다. 그러고는 나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나온 도정을 되돌아 볼 때는 옳고 그름을 가르는 가늠자가 되었다.
1983년부터 2002년까지 필자의 기업경영사는 한마디로 파란만장이었다.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부도를 낸 적도 있고 공장이 두 차례나 수재를 당해 멈춰서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공장부지 내에 온천수가 솟아 나와 꿈에 부풀기도 했다. 그 뿐이 아니다. 도약을 꿈꾸며 해외 진출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화복(禍福)이 교차하다 끝내 1998년 제 2차 수재의 피해가 너무 커서 온천 개발사업을 진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법원은 1998년에 인가받은 법원의 화의인가를 2002년에 이르러 취소하고 파산선고를 하였다.
이러한 영고성쇠(榮枯盛衰)를 겪으면서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연거푸 자연재해도 당했지만 회사가 끝내 파산에 이른 것은 무슨 까닭일까. 최고 경영자였던 필자의 부덕과 무능의 소치 때문이 아닐까? 직원들은 이렇게 된 연유를 몰랐을까? 필자는 위인구아의 정신에 얼마나 충실했다 할 수 있나?
예부터 지도자가 갖춰야 할 자질에 대해 많은 지적이 있어 왔다. 위신사충(爲臣死忠)이라 하여 “임금이 신하를 위하면 신하는 임금을 위해 죽음으로 충성을 다한다.”고 했다. 위인구아(爲人救我)가 백성들 사이에 갖출 의리의 일반론이라면 위신사충(爲臣死忠)은 군신(君臣) 간에 있어야 할 특별한 의리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또 널리 알려진 지도자의 덕목도 있다. 첫째 원리 원칙의 가르침을 받을 스승이 있어야 한다. 둘째 직언을 해줄 측근이 있어야 하며, 셋째 훌륭한 막빈(幕賓)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회사는 여러 사람의 협업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집합체이다. 구성원 개개인의 능력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들의 합친 힘이 회사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한 사람의 힘으로 사업이 성공한 예는 극히 드물다. 구성원들의 협조와 협력으로 비로소 성공하게 된다. 물론 이때 가장 중요한 역할은 최고 경영자의 몫이다. 그래서 성공한 국가나 조직의 필수 요건으로 지도자의 능력과 자질, 그리고 인품이 강조된다.
우리 연구원의 내부신고 측면 지원으로 그 분의 ‘위인구아(爲人救我)’ 가르침의 조그마한 실현으로 보고 지난해 12월 KBEI의 홈페이지에 위인구아를 제목으로 졸고를 올렸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그 분의 신원이나 연락처를 알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드디어 가르침을 주셨던 노인을 찾는 저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그 분이 경기도 광주노인회 회장이셨던 계암(癸菴) 남병한(南炳漢) 씨로서 이미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분의 장남 남재호 광주 문화원장이 부친의 탄신 100주년 유고집을 발간한 사실도 알게 되었다. 유고집을 통해 그 분의 평생의 삶을 잘 알게 되었다.
필자와 같은 종씨(南)로 더욱 친근감이 들기도 해서 그 분의 자제분 남재호 광주 문화원장을 만나 필자에 좋은 가르침을 주신 계암 선생의 유덕을 이야기하고 싶다.
다음호에 계속
2026년 1월 30일
한국기업윤리경영연구원 이사장 南在祐










